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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홍 양도준 열사 등 8인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함춘선 승만수 지사 등 20여인이 부상하였으며 그 외에 많은 분이 체포당하다. 큰 희생에 애통해 하면서 김의사는 일경의 수사망을 피하여 낮이면 척야산 아래 용호대에 있는 다락방에 은신하고 밤이면 덕원산 길을 왕래하곤 하다가 일경의 래습을 받으면 청로봉 앙천봉에 피신 풍찬노숙하면서 3년을 지났으나 선자제일 밤 제사 차 하산 도중 검거되다. 구경 김의사는 4년간의 형역을 마치고 귀향했으나 본제와 가산은 획신되었으며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양안이 실명되고 지체가 불여의하게 되어 3년을 못넘기고 여생을 중병과 고통으로 마감하였다. 성인의 의지에 이른 의로운 선비의 일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후인들의 미거로 의로운 선인들의 거적들이 묻히고마는 예가 많아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강원도민일보 춘천문화방송 홍천군이 공동으로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드디어 역사 현장의 기념구역화 및 선양사업을 펼치면서 김의사에 대한 추모비명 병서를 청하므로 늦은감은 없지 않으나 동창마을 선열들의 애국유덕을 기리고 명복을 빌면서 이에 명과 아울러 서를 지어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