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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마을 기미만세운동 주도 김덕원 의사 추모비명 병서 김의사의 휘는 원경이요 자는 덕원이며 본관은 경주로 시조 신라대보 휘 알지의 61세손이며 라말 경순왕의 후인 조선 개국공신 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계림군 시 제일공 휘 균의 20세손이다. 계림군 제3자인 증 이판 휘 이성의 후를 경파라 부르는 것은 김의사의 17대조인 6조 청백리 한성판윤 시 공호공 휘 종순(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육조에 걸쳐 청백리로 선입) 때문이며 세거지를 홍천으로 옮기게 된것은 9대조인 진사 휘 세신부터이다. 부 통정대부 휘 정준공과 모 경주최씨 사이에 1876년 11월 26일 장자로 태어난 김의사는 자유시로 한문 수학에 힘쓰는 한편 빼어난 담력과 출중한 체력을 바탕으로 같은 연배 사이에서 지도성을 보이더니 관 19세에 동학군 최후의 결전장이 된 풍암리 전투에서 선봉에 서면서 항일운동대열에 본격적으로 나서다. 마방을 운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정보를 교환하던 김의사는 43세되던 1919년 3월 1일 처음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울려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