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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 몸을 아낄 줄 모르리오마는 국사위급지추에 그 생명을 돌보지 않고 누가 제 집 먼저 생각할 줄 모르리오마는 세대 혼란한 때에 겨레 걱정 앞서하는 이가 잇다면 그는 곧 지사요 의인이라 하겠다. 원래 국가와 민족이 있고서야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국가 민족을 위하여 지사나 의인이 되는 이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여기에 일성과 같이 그 정신이 뚜렷하고 산두와 같이 그 위업이 높으신 분이 계시니 우리가 길이 추모하는 허노암 선생이 바로 그분이시다. 앞서 조선 철종 정사 12월 10일에 선생이 이 고장 홍천의 거족인 허씨 문중에서 고고의 성을 발하니 어려서부터 영오하고 간항하여 보는 이마다 타일의 대기로 일컫고 장성함에 머쳐 천인벽립의 상과 구우막회의 지를 간직하여 누구나 명당의 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약관으로부터 기우러가는 시운 가운데 선생의 심지는 가장 처창하고 그 진지는 자못 불우하였다. 갑오동학도가 의거를 이르켰을 때 선생은 관군측을 달래어 피차의 유혈극을 연출치 않고 1읍의 안전을 도모한 공이 컸으며 인강이 침략으로 대하가 쓰러질 당시에는 의병대장 민긍호와 손을 잡고 항일운동에 정신한 바가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기우는 대하를 일주로써 지탱할 수 없음은 이세의 필연이다. 정미년 이후론은 정계에 뜻을 끊고 가재를 기우려 육영과 진휼에 힘쓰니 향곡에는 기근의 빛이 줄고 유위한 청년들이 그 문하에서 배출하였다. 그러하니 선생의 존재는 당세의 지주요 그의 교풍은 천추의 귀감이다. 여기에 선생의 비를 세움은 어찌 한 지방의 일뿐이랴. 선생의 성은 허씨, 관은 김해, 휘는 장환, 자는 덕오, 노암은 호요 벼슬은 통훈대부 의금부도사이였다. 오고가는 이여 반드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일 것이다. 단기 4294년 4월 일 국립서울대학교대학원장 문학박사 이병○ 짓고 ○○생 이제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