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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강탈을 위한 일본의 침략일지(일본 강점기 민족 독립운동) 일본은 1910년 8월 22일 역적들을 동원하여 황제의 어인도 없는 허위문서인 "한일합병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늑탈하였다. 이는 아래와 같이 일찍부터 계획하고 준비해온 일본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을 비에 적어 남긴다. 1.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일수호) 조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조선침략을 준비하였다. 2. 1894년 동학혁명 진압과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이 국모 시해와 단발령을 내려 민족이 분노하여 을미의병이 거병하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의 조선 진주를 정당화하면서 조선강탈계획을 다져 나갔다. 3. 러일전쟁(1904~05년)에서 승전한 일본은 비밀리에 '포츠머스조약'(러·일·미 3국이 대한제국의 보호감독권을 일본에 주기로한 부당한 조약) 체결로 국제적 명분을 쌓은 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늑탈(을사늑약)하였다. 4. 일본이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내정 감독권 강취 황제 폐위,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여 민족은 정미의병전쟁으로 응전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은 이런 일본의 국권늑탈에 대한제국 민중의 정당한 항거이자 인류평화 운동사의 신기원을 이룬 독립운동으로 중국과 인도 등 식민지 백성의 빛이 되었으며,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8·15광복까지 일본의 압박과 박해, 강제징집과 위안부 강제동원과 자원의 수탈로 한반도에는 땅과 사람만 남아있었다. 1919년 3월~5월까지 독립운동 인적 피해 상황 사망자 7,500여명, 부상자 18,000여명, 구속자 47,000여명, 피검자 200,000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