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page


168page

사국봉(思國峯)의 유래 서기 1919년 4월 이 고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 의사는 왜경에 쫓기어 용호대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집요한 왜경의 수색으로 의사는 은신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어 먼저 청로봉에 올라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향리에 망배 하직을 고한 다음 이곳 사국봉에 이르러 망국의 통한을 가눌 길 없어 하루밤을 눈물로 지새고 떠났다. 의사는 그 후 왜경에 피체되어 모진 고문으로 실명하게 되었고 국권회복의 큰 뜻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는 이 길을 밟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998년 초가을 이곳을 답사한 작가 서기원 사백(‘96년 문학의 해 조직위원장)이 의사의 행적을 추모하여 사국봉이라고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