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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뭇한 흔적 삭아내려 아! 슬픔조차 잊혀지려 하지만 어둔 혼돈과의 감연한 투쟁이 비석돼 전설로 이어질지언정 어찌 선연한 피조차 시대의 바람에 쓸려 사라지게 할 것인가. 그리하여 기록하나니 불처럼 새겨두어라. 역사의 거대한 얼굴을 마주하고 퍼득 깨우쳐 하늘처럼 푸르게 가슴 열어보아라. 희생과 영원을 변주한 선각에게서 문득 깨달아 그들의 분노 혹은 환희용약은 나타의 오늘에 빛이며 또 그들의 행장 혹은 질주는 이 땅의 비굴과 나약에 가차없는 충격임을 알게 하라. 오늘 여기 동창마을에 서서 구천에 고한 뒤 깨끗한 피 한 방울 흘려보고 잠자던 그대가 난한의식을 혁명처럼 일으켜 선각의 향그런 체취 맡아보아라. 일어나 또 다시 민족과 역사 앞에 뜨거운 눈물 흘리려거든 그리하여 매화꽃처럼 아름다운 충혼의 유덕을 기리려거든 바라건대 부디 그렇게 해 보아라. 아! 우리들의 정신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