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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사하였다. 선생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 담은 소년때 미국에 망명하여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역임한 바 있으며 장녀 숙향은 일찍이 홀로 되어 선생의 곁에서 구국운동 뒷바라지와 지극한 효성으로 임종 시까지 시탕하였다. 차녀 자향은 윤치호 선생의 차남 광선에게 출가하였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은 불의와 추호도 타협하지 않고 말보다 실천을 앞세웠으며 앞일을 헤아리는 혜안을 가지고 경륜이 원대한 민족의 지도자였다. 1945년 조국의 광복 이후 제자들이 학교를 재건하고 각지에 동상을 세워 선생의 유덕을 기념하였고 금차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남궁씨 종중에서 대비를 마련했음으로 정성것 붓을 들어 선생을 뫼시던 그때를 회상하면서 삼가 선생의 위대한 행적을 여기에 옮긴다. 서기 1978년 무오 4월 5일 문하생 탄암 조용구 삼가 짓고 족제 취락재 남궁화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