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page


57page

김홍기(金鴻基)는 봉화(奉化)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때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을 중심으로 전국 유림대표 137명이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를 발송하는 운동을 함에 각 지방 유림대표를 심방하여 서명 날인을 받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1925년 8월 김창숙이 중국으로부터 비밀리에 입국하여 내몽고(內蒙古)지방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할 자금으로 20만원의 군자금 모금을 목표로 활동할 때에 이에 찬동하여 김창숙의 지령서를 김뇌식(金 植)에게 전달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함께 하기로 하고 2천원을 기탁받았으며, 김뇌식과 동행하여 강 필(姜必)을 방문해서 또한 2천원을 기탁받아 함께 4천원을 그와·김뇌식·강 필 3인이 동행하여 동래에 은신해 있는 김창숙에게 전달하였으며, 김창숙의 군자금 모금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26년 3월 이 군자금 모금운동이 일제에 발각되자 그도 역시 피체되어 수개월간 미결감에 수감되었다가 출감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