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page


39page

개암공(開巖公, 1524-1590)은 휘는 우굉(宇宏), 자는 경부(敬夫),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남명·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절차탁마하여,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 예문관 검열을 거쳐 전적·정언·헌납·부수찬·사복시정·동부승지·대사간·대사성·승지·충청도관찰사·홍문관 부제학·광주목사 등을 두루 거친 청백리셨다. ‘개암십이곡’ 창작 시기는 상주 개호(開湖)에 머문 1585년과 1587년 사이로 추정되며, 개암공의 증손인 외서암공(秋任, 1592-1654)이 12곡 중 8곡을 수집하여 수록하고 「개호잡록(開湖雜錄)」이라 이름하였다. 서울대학교 권두환·조해숙 교수가 개암공 7대손인 소암공(鎭東, 1727~1800)의 필사본「추모록」에서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그 후에「개호잡록」원본이 발견되어 그 중 4곡을 원본 표기대로 시비에 올린다. ‘개암십이곡’은 교훈 목적인 ‘도산십이곡’과 달리, 개암공 자신의 인생관을 바탕으로 은유적 현실 비판과 선비의 강호지락을 읊음으로써 문학적 완성도를 높임은 물론, 향촌 문화로서의 시조 전승 과정 및 정착 시기와 발전 과정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의의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암공(開巖公) 15대손(代孫) 철진(哲鎭) 근식(謹識) 종구(鍾九) 근서(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