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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취지문 어느 시대든 과제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풀어가는 바른 줄기가 시대 정신이다. 무너진 나라를 되찾아 세우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사람을 독립지사라 일컫는다. 이곳 봉화도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파리장서운동 참가자가 단연 우뚝하다. 1919년 3.1운동은 대하민국 독립운동 51년(1894~1945) 역사에서 한 가운데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평화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때, 온 겨레가 일어나 대한민국이 독립국이라고 전 세계에 선언한 것이 3.1운동이고, 그 평화회의에 심산 김창숙 선생의 지휘아래 면우 곽종석 선생을 필두로 137명의 대한민국 유림대표가 보낸 독립청원서가 파리장사였다. 여기에 봉화출신 유림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봉화읍 유곡리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권명섭, 권병섭, 권상문, 권상원,권상도,권상익 선생, 봉화읍 해저리의 의성김씨 문중에서 김건영, 김순영, 김창우 선생등 아홉분이 그 주역이시다. 서명유림 137명 가운데 경북춘신이 62명으로 가장 많은데, 봉화는 성주(15명)와 달성(11명) 다음으로 세번째이니, 파리장서운동에서 가지는 봉화의 위상은 실로 다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봉화 선비들의 올곧은 성품과 시대적인 과제를 풀어나간 바르고도 강한 의지를 고스란히 말해준다. 이들의 뜻은 한 해 뒤 제2차 장서 추진과 1925년부터 이듬해까지 펼쳐진 제2차 유림단의거로 이어져 유림이 주체가 된 항일투쟁의 마지막 장으로 타올랐다. 뜻을 바르게 세우고 민족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선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의 발자취를 봉화 선비들이 보여준 것이다. 이곳을 지난 이들이여! 무두 옷깃을 여미고 봉화 선비의 올곧고 높은 뜻을 기리면서 고개 숙여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잇겠노라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