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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이름은 주진수(朱鎭洙)인데 진수(鎭壽)라고도 하였다. 백운은 선생의 호이며, 신안(新安) 사람이다. 주병휘(朱秉徽)의 아들이요 지금부터 81년 전인 고종(高宗) 무인년(戊寅年)에 울진군 후정리(後亭里) 매정(梅亭)에서 출생하였으며, 병자년 만주 영안현 해림에서 사망하셨다. 두 아들이 있었으니 창열(昌烈), 창근(昌根) 선생이다. 선생님에 관한 사실들은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지은 『독립노선(獨立路線)』, 김구(金九) 선생의 『백범일지(白凡日誌)』,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도산실기(島山實記)』와 『조선혁명소사(朝鮮革命小史)』를 참조하라. 또 향우 전영경(田永璟)은 선생 밑에서 여러 해에 걸쳐 고생을 같이 하였는데 행적과 이력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그 까닭으로 후면에 국문(國文)으로 선생의 업적을 여러 조목으로 간략히 기술한다. 그러나 또 해독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어 성명은 한자로 한 반면에 제액(題額)하고 장차 선생의 실록(實錄)을 새겨서 썩어 없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선생의 본향(本鄕) 동지인 황만영(黃萬英), 주동웅(朱東雄), 최경호(崔慶鎬), 곽종목(郭鍾穆), 진규환(陳奎煥) 제공(諸公)은 다 기록하지 못하였다. 비문을 새긴 날은 단기 4291년 무술 황화절(黃花節)이고, 후학 윤호규(尹鎬逵)가 삼가 찬하다. 발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