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page


21page

갖춘뒤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중, 울진 서면과 봉화 소천일대에서 마주친 왜적과 수차의 교전끝에 적군을 섬멸하는 많은 전과를 거두었었다. 이듬해인 1907뇬 봉화에서 혈맹동지인 권용하등과 합세하여 의병 오백여명을 고모하고, 또 다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3년여동안 울진, 봉화, 영양, 청송, 내덕, 풍기등지를 전전하면서 지휘자로서의 뛰어난 지락과 열화같은 용장으로 선봉에 서서 왜적을 물리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다. 그러나 봉화군 두전지구전투에서 치열한 격전에 혼신을 다하여 행쟁하였으나, 중과부적의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넘지 못하고, 끝내 왜적에게 피체되어 애석하게도 서기 1908년 무신에 꽃다운 3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으니.. 오호라! 지고한 충절의 뜻 다 펴지도 못한채 애절하게 순절하신 피맺힌 그 통한을 차마 이를길 없도다. 드디어 정부에서 1990년 8월 15일 장군의 충의로운 의병활동에 대한 그 빛나는 위업과 공훈을 높이 기려 대통령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셨다. 이렇듯 장군은 한시대를 보람있게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몸바치신 선구자로서, 오로지 젊은 청춘을 위난의 조국을 위한 구국전선의 선봉인 의병장이 되어, 헌준한 태백산맥을 거점으로 조국의 산하를 누비며 악독한 왜적을 격멸하며 많은 전공을 세우시고, 순국하신지 어언 백여성상! 어즈버 장군이 피를려 남기신 고귀한 업적들이 청사에 기리 빛나는 공훈으로 크게 아로새겨져야 하땅할 진데, 기후 일제치하의 혹독한 감시와 탄압에 못이겨 온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였고, 이로 인한 가세의 화란은 지금껏 후손의 생사조차 알길없게 되었으니, 그 위벙의 현창은 고사하고, 유업의 체백조차 수습치 못한채 불귀의 고혼으로 떠돌게 하고 있었음은 정녕 우리 후세들의 비도요, 수치라 않을 수 없다. 다해이 오래 돈절했던 주손 중화(증손자)의 주선으로 늦게나마 뜻있는 지역인사와 종친들의 열의를 모아 마침내 순국의사 남태영의병장충의비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국가보훈처와 울진군이 이 뜻을 높이 새겨 아낌없는 재정지원과 각개각처에서 충원해주신 알뜰한 정성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