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page


20page

위난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하신 남태영의병장은 서기1872년 계유 3월 28일에 울진군 북면 상당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양남씨 22세손으로 상조로는 신라 영의공 휘 민이 시조이시며, 고려 중대광 도?의 찬성사로 영양군에 습봉되신 휘 홍보공이 중시조가 되시고, 15대조 휘 영번공은 고려 신호위보승중랑장으로 14대조 수공은 사헌부 감찰어사로, 12대조 휘 거공은 무과급제하여 참정국원종훈 일등공신으로 한성탐군이셨고, 조부는 휘 경철, 고는 휘 치영이시고 장군의 배는 한양조씨이시다. "장문필유장"이요 "상문필유상"이라 하듯 ??세족에서 나신 장군은 유년시절부터 남달리 호장한 기품에다 재기가 총민하였고, 불의앞에 결코 굴하지 않는 강직한 의협심이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매사에 살신성인하므로 써 장차 대업을 이루게 될 걸출한 장상지기를 떨치며 성장하셨다. 서기 1905년 이 땅에 일제침략의 간악한 마수를 들어낸 을사늑약으로 온 민족이 비분강개하며 국권을 회복코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왜적의 무력침탈에 분연히 맞서 싸우는 역사적인 일대의병항쟁이 봉기되였다. 이에 장군은 혈기방장한 32세에 오로지 불타는 구국일념으로 뜻있는 지사들과 창의하여 울진군 서면지역에서 젊은장정들을 규합 의병을 모집하고, 이들을 지휘하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당당한 의병대로서의 전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