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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이 낳은 위대한 독립운동가 죽헌 이목익 선생과 삼사 이화익 선생 형제를 기리는 기념비를 고향인 이곳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 도화동산에 세운다. 이 목익, 이화익 형제는 신라조 알평의 후예로 형 목인 선생은 1867년 10월 26일에 태어나서 1949년 9월 21일 향년 83세로 별세하시고, 동생 화익선생은 1874년 9월 6일에 태어나서 1934년 8월 5일 모진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향년 61세로 별세하셨다. 형 목인 선생은 조국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였으나 동생 화익선생은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고 타계하셨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형 목익 선생은 구한말 일제에 의해 국권이 찬탈당하여 이 나라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하자 슬픔과 비분을 참지 못하여 조국을 되찾는데 온 몸을 바쳐 조선독립운동을 앞장 서 전개하였다. 의병대의 거두 이강년에게 군자금을 지원했으며,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무너졌을 때 단식을 하여 순국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일제는 경제의 생명체인 농작물 수산물 광산물 산림은 물론 수공업 원료까지 수탈하는가하면 심지어 토지세 가옥세 가축세 지방세 주조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등의 각종 세금 항목을 만들어 조선인의 생존권을 찬탈했다. 그 뿐만 아니라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금융조합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착취로 조선인의 파산이 날로 증대되고 조선전역에는 일본 상품이 범람하여 이 나라의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이에 분노하고 실상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포고문을 1920년 10월 22일 울진지역 주요지 건물벽에 게시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