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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합하여 국권회복(國權回復)할 것을 주창(主唱) 은밀히 동분서주하다가 21세의 약관의 몸으로 왜경(倭警)에게 체포되여 극악무도한 신문(訊問)과 모진 고문에 굴하지 않고 오직 일제(日帝)식민지통치체제를 반항하다가 치안(治安)유지위반죄 및 일본천황불경죄명(日本天皇不敬罪名)으로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판결에 1년 징역(懲役) 언도를 받고 이에 불복(不服)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 상고(上告)하였으나 총독부 판사(判事) 심리에서 본건은 이유없다 하여 기각처리되여 1년 징역이 확정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만기출옥(滿期出獄) 후 요시찰감시생활(要視察監視生活)이 너무 불안하여 일월산(日月山)에 입산하여 정양하다. 1940년 단신(單身)으로 도만(渡滿)하여 고향 선배인 안규원(安奎源) 황병문(黃炳文)씨 등 독립투사와 합류(合流)하여 동지(同志)를 규합 확대하던 사이 2차 세계전쟁(世界戰爭)의 종말을 앞두고 1942년 귀국하여 향토에서 수신(修身) 중 환희의 광복을 맞아 지사는 울진군건국준비위원(蔚珍郡建國準備委員)으로 일본군경(日本軍警) 무장해제(武裝解除)와 그들을 일본으로 돌려보내는 등 치안유지에 진력하고 지방자치에 공을 남기시다. 그후 지역사회 도움과 여러 사람이 은연중 갈망하는 건강을 생각하고 특히 이 고장 의료 취약점을 생각하여 많은 연구와 인술(仁術)을 베푸시니 그 공이 지대하였다. 지사는 항일 옥살이 고문의 여독(餘毒)으로 1962년 9월 15일 50세로 파란많은 일생을 마치시니 아! 애석하도다. 지사의 자주독립에 헌신(獻身)한 항일공로(抗日功勞)를 찬양하여 1983년 8월 30일자로 대통령께서 애국지사 추서(追敍) 및 포상이 있었고 1984년 10월에는 묘역(墓域) 단장금이 지원되어 묘역마져 깨끗하게 정리되어 지하(地下)의 지사는 웃음으로 평화 속에 지나오리. 우리 고장이 낳은 지사의 숭고(崇高)한 애국정신의 얼을 추모(追慕)하고 후세 교육에 본이 되기 위하여 뜻있는 동지(同志)로 하여금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追慕碑建立推進委員會)를 구성하고 각계 각층의 성금으로 이 자리에 추모비를 건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