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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첩이 임정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1926년 4월 정의부의 유일당 창립에 참가하기위하여 선생은 이규풍 최소수등과 러시아에서 길림으로 왔으며 정의부의 양기탁 현정경등과 천도교의 김봉국 이동락과 형평사의 이동구 송헌등이 모여 고려혁명당을 조직하는데 선생은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수임으로 당을 이끌었다. 왜적은 만주를 삼키고 이민한 우리 민족을 박해하니 선생은 만주 해림현으로 잠시 피신하여 기회를 노리던중 59세의 시년으로 1936년 9월 16일 그리던 조국광복을 10년 앞두고 영면하시다. 선생의 모는 담양전씨 윤기의 녀며, 배는 예천 임씨 유근의 녀로 자는 창렬과 창근이다. 광복 61주년 3.1절을 맞아 백운선생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선생의 애국애족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매화 만흥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이 주도한 만세공원에 기념비를 세우며 문헌상으로 국가 공훈록과 백운선생 실록에서 선생의 활약한 기록을 찾아 볼수 있다. 행적을 명하니 선생은 매회리에 만흥학교 세우니 청소년학생모아 나라사랑 일깨웠네 평생을 의로 살며 한 평생 항일운동 사선을 넘나들며 만난고초 겪으시고 광복길 10년두고 망명길 세상뜨니 하늘도 무심하니 이 또한 운명인가 매화산만세공원 돌에 새겨 기리오니 찾아든 사람마다 선생업적 기리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