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抗日 義兵將 申運錫 將軍 殉國紀念碑(항일 의병장 신운석 장군 순국기념비) 청일전쟁후(1894~1895) 일본의 국권침탈 야욕이 날로 드러나 결국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이어져 이에 전국각지에서 국권회복 항쟁이 일어날 때 우리 영덕 지역에서도 항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분이 계셨으니 바로 신운석 의병장이시다. 장군은 1839년 영덕읍 화개 2리(三近里:삼근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응천(應天)이요, 호는 청헌(淸軒)이며 평산인(平山大)으로서 고려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후예이다. 공(公)은 1896년 초 병신창의시(丙申倡義時) 영덕의진(義陣)의 의병장에 추대되어 남정면 부경리에서 진을 치고 음력 3월 13일 적을 맞아 항전분투하였으나 패퇴하여 영덕읍 남천숲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 후 적의 파상공세를 영덕의병들의 불굴의 기상으로 물리치자 기세가 꺾인 적은 주춤하여 전세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이즈음 음력 5월 24일 경기도 이천에서 봉기한 김하락 의진(義陣)과 청송의진(義陣)의 지원으로 연합진을 치고 있던 중 음력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남천숲 전투에서 아군은 결사항전하여 첫날 적을 크게 물리쳤으나 다음날 수백명의 적 증원군이 들이닥쳐 결국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김하락 의병장이 전사하는 등 패배하였다. 신운석 장군도 후일을 도모코자 지품면 속곡리에 피신하여 있던 중 적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혀를 깨물어 항거하다가 1896년 음력 8월 3일 총살당하였다. 이와 같은 신장군의 장열한 순국정신을 높이 받들어 1979년 3월 1일 영덕향교가 중심이 되어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 현 영덕군보건소 옆에 순국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정부에서도 신장군의 항일구국정신을 기리어 2005년 8월 15일 광복 60년 뜻깊은 해를 맞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을 추서(追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