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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의진에 참여하여 영솔장(領率將)으로 경북 울진·청송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거족적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전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최주형은 1906년 신돌석 의진에 참여하여 영솔장(領率將)으로 활약하였다. 신돌석 의병부대는 1906년 3월 13일(음) 영덕 복평리 축산에서 약 300여 명의 병력으로 거의하였다. 이후 영해읍을 거쳐 평해읍, 울진읍을 행군하며 병력을 점차 증가시켜 3,0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최주형은 신돌석 의병부대의 영솔장으로 1906년 울진 장호관 전투에서 적을 무찌르고 일본 함선 9척을 격침시키는 등 전과를 올렸다. 1907년에는 울진 매화리와 청송 등지의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등 강력한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 26일 평해 병곡면 아곡전투에서 왜병과 교전하던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