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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兵 領率將 崔公(珠衡) 殉國記念碑(의병 영솔장 최공(주형) 순국기념비) -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ㅇ 관리번호: 33-1-44 / ㅇ 관리자 : 경주최씨 영덕읍 우곡문중 최석우 / ㅇ 시설내용 - 건립일자 : 1986년 11월, - 시설규모: 부지 188㎡ 탑신 70㎝ 제단 230㎝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서 태평세대를 만나게 되면 국리민복(國利民福)이 되게 정치를 하는 것이요. 나라가 위급할 때를 당하게 되면 나라와 겨레를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하여 절의(節義)를 세우는 것이다. 공은 1875년 11월 13일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성근(聖根)이며, 경주인(慶州人)으로서 신라 문창후(최치원)의 후예요. 병주(柄柱)의 아들이다. 1904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이후 외적이 침략하기 시작했다. 국내 각처에서 피끓는 청년 남·녀가 봉기하여 적을 대향하게 되었으며, 동해안을 담당한 우리 고장의 의병 대장인 신돌석 장군이 기치를 높이 들고 의병을 모았다. 공이 달려가 장군을 뵙고 전략을 의논하니 영솔장에 임명하였다. 영양, 진보, 청송, 울진, 평해, 영해, 영덕 등 많은 지역에서 외적과 전투를 하였으며, 장군의 명을 받아 병곡면(柄谷面) 아곡리(牙谷里)에 진지를 구축하고 바야흐로 출전하려는 즈음에 적의 무리가 밤을 타고 다가와서 사면으로 공격하니 포연탄우(砲煙彈甫) 속에 아군은 생존자가 수십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공은 끝가지 결사고투(決死苦鬪)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적의 흉탄에 의하여 1907년 6월 26일 순국하시니 향년 겨우 33세였다. 이와 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산화하신 순국선열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장군의 유가족이 중심이 되어 성금을 모아 순국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정부에서도 최주형 영솔장의 항일 의병 구국정신을 기리어 2001년 8월 15일 제56주년 광복절에 대한민국 건국훈장(建國勳章) 애족장(愛族章)을 추서하였으며, 2002년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