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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우는 백행의 근본이요 충의는 만고의 명절이라 해사 박의연 하산 박의열 호산 박의훈 3형제는 우애가 돈독하여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사생취의한 분이다. 공들은 함양박씨이니 려말의 학자 문재공 치암 휘 충좌가 현조이시고 영해 입향조 원모재 휘 종산의 14세 손이요 울산공 소호 휘 신지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휘 주병 통정돈녕부도정이고 어머니는 무안박씨이다. 의연공은 1880년 경진 9월 20일 영덕 창수에서 나셨다. 호는 해사이고 일명 건이요 자진이라는 이명도 가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신돌석 장군의 의병진에 참가하였고 신민회 영덕지구 대표로 뽑혀 활약하다가 1912년 32세 때 아우 의열과 이상용 김동삼 등과 솔권하여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그 곳의 이철영 이원일 여준 동지들과 합류하여 독립운동단체인 경학사 부민단을 발전시켰다. 1914년 하서강에 남흥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여 동포들을 계몽하고 민족사상을 고취시켰다. 동년 4월 유하현 삼원보에서 이상룡 김동삼 왕삼덕 곽급문 남정섭 등과 한민회를 조직하고 중앙위원에 선임되어 군자금 모금에 힘썼다. 1915년 민족유일당 촉성회를 발기하여 남북만을 순회하다가 독립단의 한치응 박응서와 함께 일경의 밀정 유길선을 제거했다. 19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