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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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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제 장군은 곧 붓을 던지고 김하락(金河洛) 의병진의 중군장이 되니 그해가 1896년이요 장군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그때부터 장군의 생애는 오로지 조국과 백성을 위한 가시밭길이었으니 그 진영이 흩어진 후 장군은 동지를 찾고 뒷날의 큰일을 위하여 천하를 두루 다녔다. 박상진 의사와는 죽음의 맹세로 손을 잡았고 이강년 장군과 피로써 이 강토를 구하자고 다짐을 했다. 1906년 3월 장군은 드디어 횃불을 들었도다. 삼백여명의 동지들이 장군의 깃발 아래 모여 들고 장군은 전 가산을 던져 무기와 군자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만 삼년 장군의 깃발이 가는 곳마다 왜적은 쓰러지고 그들의 소굴은 무너졌다. 겨레를 팔아먹는 도적의 앞잡이를 꾸짖고 원통한 백성을 달래었다. 장군의 군세는 삼천명에 이르렀고 그의 호령은 경상, 강원, 충청의 세 땅을 울리었다. 남으로 동내산에서 북으로는 대덕산과 멀리 간성땅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고을에서 왜병의 분파소를 부수고 수십번의 싸움에서 적도를 무찔렀다. 그러나 하늘은 끝내 이 나라를 버렸으며 우리의 장군도 앗아가고 말았다. 1908년 겨울 장군은 잠시 싸움을 잊고 군사를 흩어 후일을 기약하던 중 원통하도다. 그해 동짓달 열여드렛날 간악한 무리에게 속아 세상을 떠나시니 영덕 땅 지품면 누루실 골짜기 서른한 살의 푸른 별이 지던 밤 동해의 물결도 노여워 아우성쳤으며 태백의 산줄기도 원통해 울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