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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망국 침탈을 통분 불사하든 바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신리 지역의 총책을 담당하신 선공을 보좌하여 의사와 동지를 규합 선공의 지휘하에 2백여 독립만세군을 인솔하고 창수면 일경주재소를 포위하여 그들을 항복받고 그곳에 태극기를 꽂았으나 중과부적으로 부자가 함께 피체되여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거사의 책임을 부자가 독담하니 선공은 4년형이요. 공은 1년 6월형을 선고받은지라. 장하다 공의 부자여 민족의 강상이요 양대의 충절이며 애국의 귀감이읍기이에 국비의 지원을 얻어 이 비를 세우고 묘역을 정화하였도다. 공은 출옥 후 향리에서 은거 후진양성에 진력 청빈하신 지사로서 1964년에 졸하니 향년 67세이시다. 배는 춘천박씨이며 생 1남 1녀하시니 남 호필 녀 안동 권찬석이며 배 성주배씨와의 사이에 1남 3녀이니 남 만호요 녀 제주 고재명 차녀 진안 주종현 3녀 김해 김일태이니 모두 2남 4녀이시다. 장남 호필은 등세하고 차남 만호 생 2남하니 병무 대훈이며 녀 권찬석은 생 1남하니 재달이요 차녀 고재명 생 2남하니 형주일이며 4녀 김이태는 생 2남하니 재철 재훈이요. 이하 불진록하다. 오호라. 공의 고명한 품부와 일생의 위국단심으로 경지허귀하니 실후통탄이라. 일에 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