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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량마을 이곳 인량리(仁良里)는 영해에서 서쪽으로 십리 되는 곳에 삼면이 산으로 쌓여있고 남쪽에 내가 가로 놓여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큰 동리로 영남의 명지(名地)로 이름이 높다. 마을의 역사는 선사(先史)시대부터 오늘에 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옛날 지명은 잉량화(仍良火)라 하다가 뒷산 형국이 학이 나래를 펼친 것과 같다하여 비개동(飛蓋洞), 나래골, 익동(翼洞)이라 하였으며 광해(光海) 2년(1610)에 인량(仁良)으로 개칭되었다. 일설, 나라 골(國洞)이라 불려오는데 이는 나래 골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영해부지(寧海府誌)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八姓宗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풍속이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어지지 않으니 부내(府內)에서 으뜸가는 동리라 하였다. 광해 7년(1615)에 군내에서 처음으로 향약(鄕約)을 제정하였으며 숙종 9년(1683)과 1927년에 규약(規約)을 시대에 맞게 중수(重修)하여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기미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의병으로 구국(求國)에 참여하신 분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현재도 많은 인재가 각계에서 활약(活躍)하고 있다. 동리에는 크고 작은 고가옥(古家屋)과 많은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으며, 특히 전통테마 마을과 정보화 마을로 선정되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마을로 군내에서 다른 마을보다 앞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