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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申乭石, 1876~1908)은 1896년 영해의진에 참가했다고 전한다. 그는 1906년 3월 영릉의병장(寧陵義兵將)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뒤 영해·울진·원주·삼척·강릉·양양 등 경상도·강원도 일대에서 태백산맥의 산간지대와 동해의 해안선을 오르내리며 의병항쟁을 펼쳤다. 1907년에는 일본군 편을 들던 영덕의 관공서를 격파했으며, 영양에서는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물리쳤다. 경주의 대산성에서도 수일 간 전투를 벌였으며, 영덕의 조현(鳥峴)에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다. 10월에는 영해경무서를 습격하여 경찰을 추방하였다. 1908년 1월에는 평해의 독곡(獨谷)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3월에는 안동·울진·삼척·강릉 등지의 의병과 연합하여 군세를 키우고, 춘양·황지·소봉동 등지에서 적을 격파했다. 이후 신돌석은 만주로 가려고 준비하다가 눌곡(訥谷)에서 김상렬(金相烈) 형제의 기습을 받고 숨졌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신돌석의 집은 아버지 신석주가 1850년 무렵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뒤 1940년 일본 관헌들이 불태워 일부가 무너졌다. 1942년 상량주 연목 일부를 새로이 세우고 기와집으로 꾸몄으나 1995년 현재의 초가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