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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 토적의 울분은 치솟고 드높았었다. 이에 수적인 왜병을 연당리 사부령에서 맞아 민병 삼십수명이 일진되어 최후의 일각까지 항쟁 격전타가 적의 신예 총탄 앞에 중과부적으로 호국의 붉은 피를 이 땅에 뿌리시고 세전 전답의 흙을 움켜 씹으며 장렬히 순절하신 분들이 있었으니 바로 김상조, 정태모, 김상진, 김영제, 안경순, 김계현, 김순흠, 김장흠, 김용흠, 심의형, 박석래, 남조한 열두분의 지사시고 때는 거금 1세기 전인 1896년(병신) 음 5월 12일. 민족의 정기가 충천한 영양 사부령의 항일 대회전이다. 슲으다. 전투를 이제 그 전투원의 다과에서 그 비중을 평가하며 출사 장졸의 품작존비로만 의의를 부여하리... 이 사부령전투는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여 선비는 붓을 던지고 창을 들었으며 농부는 괭이와 삽을 들고 부전하였으니 사농포의의 분연의거요 일구의 격문도 없이 분집항전하여 일당백의 섬적 끝에 순국하셨으니 공들의 충절이야말로 일월의 쟁광이요 의리는 송죽에 영롱하며 연당난류는 장충호곡으로 흘렸나니 이는 천추의 거울이요 영세수범의 충정이 아니랴. 이제 공들이 순국하신 지 벌써 1세기를 헤아리나 성미합으로 지우금 선양 기념하는 일편석의 수립도 이룩치 못하던 중 만시지탄이 있으나마 영양군비의 협찬과 순국지사 사부령 합동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공들의 지절을 드밝히고저 한 조각의 돌을 세우나니 뒷 사람들은 우러러 감탄할 뿐만 아니라 의를 깨우시게 하고 충과 효를 본받게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