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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오랑캐의 말굽아래 짓밟힐때는 우리 조상들은 신명을 바쳐 우리의 강토를 지켜왔었다. 우리 군민들도 이 빛나는 정신을 이어받아 을미사변에서부터 3.1운동에 걸쳐 나아가 부장하여 왜적을 무찔렀고 물러서서 비밀결사등을 조직하여 유형, 무형으로 극한의 항일운동을 펼쳤었기에 우리 군민이 독립운동사에서 그 귀감이 되고 있음은 천하가 공히 주지하는 사실이다. 특히 이 고장 출신인 이현규(1874~1917) 의사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에 겨워 의거를 주창하고 안동, 청송, 진보, 영양등 4군의 의병장에 추대되어 의병 500여명을 모아 이듬해 주왕산 청량산 오누지, 죽변등 각지에서 일군과 왜관을 사살 격파하여 대공을 세웠으나 일월지구에서 왜군과의 교전에는 중과부적으로 동지들을 잃게 되자 의병을 해산하고 영일에서 은신하여 재거의 날을 기하더니 입은 총상의 여독으로 44세를 일기로 한을 안고 기세하였다. 희라. 공은 갔어도 대의는 일월같이 청사에 빛나기에 이 비를 다듬어 공을 기리는 비를 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