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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山 趙先生 殉節碑(목산 조선생 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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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 선생은 1919년 3월 26일 현서면 화목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무계동의 유지 신태휴(申泰烋)·조병국(趙炳國)에게 격문을 보내어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는 3월 26일 오후 1시경, 주민 50여명을 규합하고, 다시 현서면사무소에 있던 구장 및 유지들을 종용하여 그들의 호응을 얻어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화목시장으로 몰려갔다. 도중에 많은 군중이 합세하여 시위군중은 수백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화목주재소에서 출동한 3명의 일본 경찰의 무력행사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제에 병탄된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비분하여 투신 순국하였다한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