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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장에 올라 외와 벌에세 적도를 휘몰아 치니 가는곳 마다 왜적은 쓰러지고 그들의 소굴은 무너졌다. 그 지략과 용맹을 적은 매우 두려워하였고 동지들은 그를 기리어 숲속의 범이라 일렀다. 정대장 부자가 차례로 순국하고 대를 이은 최세한 대장마저 꺾였으나 그 뜻은 갈수록 굳어졌다. 의진을 다시 고루어 경상우도 대장이 되니 그의 호령은 영남과 동해를 울리었다. 남으로 진주에서 북으로는 울진에 이르기까지 수십 고을에서 전후 7년간 많은 전과를 거두었으나 그 보람도 없이 끝내 나라를 빼았기니 투쟁은 새모 광복 운동으로 이어졌다. 1909년 왜적에 잡혀 투옥됨을 비롯 줄곧 세 차례에 열다섯 해의 모진 옥살이를 겪었으나 나라 위한 마음은 쉬지를 않았다. 풀려나면 곧 다시 동지를 찾고 뒷날의 큰일을 위하여 천하를 두루 다녔다. 우재룡 의사와는 죽음의 맹서로 손을 잡았고 대륙으로 건너가 김동삼 지사와는 피로서 이 강토를 구하고자 다짐했다. 대동단에서는 영남을 맡았으며 의열단을 도와 군자금을 모으는 등 지하 조직 활동으로 매운 삶을 바쳤다. 여기 임의 자취담긴 유허지에 임을 새겨 모시노니 높고 넓은 넋 삼천리를 돌보시고 억만 겨레 위에 등불이 되어 주소서. 묘소는 일찍 대구 선렬묘지에 모셨고 대덕산 공원에는 동상을 세웠으며 그 공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펴고는 이어서 경상북도와 청송군의 후원으로 강호의 정성과 의사의 아들 병태의 효성에 의하여 삼가 이 비를 세우다. 1977년 4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