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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진은 참여 인원의 면모나 전력, 활동면에서 볼 때, 한말 청송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진이다. 1896년 3월 12일(음력 1월 29일) 결성되어 16일에 창의를 천명하였다. 청송의진이 창의 시 표방한 두 가지 목표는 국권수호의 위국거의와 향촌사회 보호의 자수지계였다. 청송의진은 창의 후 주변의 안동.진보.선성.영양.의성.영덕의진 그리고 경기도에서 남하한 김하락의 이천의진 등과 긴밀한 협조하에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혹은 연합부대를 편성해 활동하였다. 그 결과 5월 14일 감은리전투, 6월 17일의 경주성전투, 7월 11일의 영덕전투, 7월 하순의 화전등전투 등 청송의진이 수행한 대표적인 전투들은 모두 다른 지역 의진들과 유기적인 관계하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해 이루어졌다. 진보의진은 청송의진과 더불어 전기 의병 시기에 청송군 관내에서 활동했던 부대로, 왕산 허위 선생의 맏형 방산 허훈이 1896년 4월 7일(음력 2월 25일)경 편성한 부대였다. 창의 후 어천,남면 화마리 등지로 진영을 옮기며 안동,청송,영양,의성 등 주변 의진과 정보를 교환하며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5월 14일 감은리전투 후 청송.영양의진과 합세하여 의성의진을 응원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안동의진의 배후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 명륜당 - 청송의진이 거병을 도모한 회의 장소 산남의진은 후기의병 시기에 청송지역의 의병전쟁을 선도한 부대이며, 인근 영천에서 편성되었다.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청송을 비롯하여 영천, 영일 일대에서 정환직, 정용기, 최세윤 의병장이 이끌었던 부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