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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항일의병사 - 1894년부터 1945년까지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온 곳이다. 그 실마리를 연 것이 바로 경북 안동에서 일어난 1894년 갑오의병이며, 이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첫걸음이었다. 또한, 민초들이 주도세력으로 급성장한 곳 또한 경북이다. 의병항쟁은 넓은 범위에서 문화권별로 전개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서부지역의 문경.상주, 북부지역의 안동.예안.예천.봉화.영주.의성.청송.영양, 동해한의 영해.영덕, 서부지역의 김천.선산, 남동부의 영천.경주.포항 등 여러 지역에서 항쟁이 펼쳐졌다. 북서부지역에서는 이강년, 북부지역에서는 권세연.김홍락.김도화.이만도.김도현.금석주.박주상.장윤덕.김상종.심성지, 동해안에서는 신돌석, 서부지역의 허위, 남동부지역의 정환직.정용기 부자와 최세윤 등의 활약이 있었다. 나라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일제의 총칼 아페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하신 수많은 의병유공자가 있으나, 경북 지역의 대표적 의병장 활약상을 나열하면, 왕선 허위 선생은 1896년 3월 김산(김천)에서 의병을 규합 성주, 충청도 진천 등지에서 활동 중 고종의 명에 따라 의병을 자진 해산 후 청송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나 1907년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아 포천,양주,철원,장단,영천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산당한 강화진의 관군까지 흡수하였고, 전국 13도 연합의병 창의군을 결성하였으며, 운강 이강년 선생은 1880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1896년 문경에서 의진을 결성하여, 이후 충북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여 유격장으로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싿. 1907년 7월 도창의대장에 추대되어 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수많은 전투를 펼쳤다. 평민 출신 항일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강원도와 경상도 등지에서 의병세력을 구축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9세의 나이로 1896년 3월 13일 영해에서 10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타고난 용기와 담력으로 일본군과 대적할 때마다 큰 전공을 세웠고, 그에 따라 영해의병진의 중군장이 되었다. 특히,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에는 해산 군대까지 휘하에 들어와 막강한 병력으로 경북 북동부 지역에서 일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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