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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진보면 괴정2리 327-1 남덕정 진보의진 창의장 허훈의 종가 재실, 묘도비, 묘소를 찾아왔다. 방산 허훈 : 의병장 왕산 허위의 맏형이다. 1895년 아우 허위가 거의(擧義)할 때 토지 3천여 두락(斗落)을 매각하여 군자금으로 제공하는 등 의병활동에 적극 협조하였다. 1896년에는 진보(眞寶)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안동(安東)·영해(寧海)·영양(英陽)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성산 허겸: 의병대장 허위의 형으로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적극 반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을사오적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후 동지 4백여 명을 규합하여 경기도 연천(漣川) 등지에서 거의하여 활약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 등과 함께 중어학원(中語學院)을 개설하여 한중 친선 및 한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합화현(哈化縣)에서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는데, 이 단체는 남만주 일대에 이주한 개척농민의 자치기관으로서 애족(愛族)·구국운동 등의 사업을 전개하여 음으로 양으로 광복운동에 기여한 바 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필은 한말(韓末)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韋)의 동생으로 허위가 순국한 뒤, 그의 형 성산(性山) 허겸(許?) 및 그 일족인 범산(凡山) 허형(許?) 등과 함께 1915년 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1922년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허필은 일경(日警)의 신문(訊問)에 단 한마디도 자백하지 않고 감금된 그날부터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는 단식(斷食)을 결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