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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의 을사늑약시는 구국의 의분이 충천하여 다시 주왕암에서 기의하여 수백명의 동지들과 회맹을 하고 척왜의 방편으로 산남의진과 합진아기로 하니 산남의진은 고종황제의 밀지로 시종경 정환직이 그의 아들 용기에게 명하여 영남 각처의 의병을 연합한 대의진이다. 의사는 결연히 부진하여 청송입암 청하 영양 영덕등지의 동해연안 전투에서 훈련되지 않은 의병과 조잡한 병기로 결전을 하다가 정예 왜병과 신예무기에 당하지 못하고 영덕 융ㅁ전에서 왜헌에 피체되어 백방의 회유에도 불굴의 이개로 항거하다가 1907년 2월 24일에 25세의 방년으로 왜헌의 총살로 장렬히 순국하셨다. 거룩하도다 의사의 위국충절이여 자신을 초개와 같이 희생하여 민족의 고난을 구하고자 조국강토에 피 뿌리니 그 넋 영원히 이 땅을 지키고 빛내리로다. 배는 밀양박씨이 사인 진문의 따님으로 여사 풍이 있어니 의사순절에 친히 시신을 수습하여 송림 임좌원에 밀장하여 광복후 치묘와 분식으로 명소가 되었다.의사 자 재수를 출산하여 대를 잇게하니 그 정렬또한 의사의 충절에 버금하도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니 남은 즉 재수니 취는 여강 이봉효이다. 녀는 적신재휴하였고 손남에 상필 상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