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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4월 정용기(鄭鏞基)·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이 중심이 되어 영천(永川)을 거점으로 하여 신령(新寧)·흥해(興海)·청하(淸河)·기계(杞溪)·죽장(竹長) 등지의 우국지사들을 규합하여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구성되었다. 이에 남석술은 의병장 정용기의 휘하에 입대하여 의병을 소모하고,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처음에 영덕(盈德)을 공격하여 적장 4명을 사살하고 적의 병영을 방화하는 등 여러 차례 적과 교전하였다고 한다. 1907년 12월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하자, 우재룡(禹在龍)·이세기(李世紀) 등이 흩어진 의병을 재정비하고 정용기의 부친인 동엄 정환직(東 鄭煥直)을 추대하여 의병장으로 삼고, 영덕 서암(盈德 西岩) 전투에서 적과 교전할 때 이 격전에 참여하였다가 전투 중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