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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현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하순경 청송 주왕사에서 동지 수십명과 회합하였으며, 12월 중순경 울진 불영사에서 안동, 청송, 진보, 영양 등지로부터 모여든 동지들과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906년 2월에 의진을 편성하여 일본군과 수십차례 교전하였으며, 4월 진보 오누지(池)에서 일본헌병 伍長·武騰이 이끄는 헌병부대와 교전하여 파천면 어천까지 추적하여 적군 대장이하 수명을 사살하였으며, 5월에는 울진 죽변에 있는 왜관(倭館)을 격파하고 영양의 북쪽에 주둔한 적군을 공격하였으나, 일본군이 증원부대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많은 의병을 상실하고 재기를 약속하고 해산하였다. 그는 이처럼 독립 의진으로 활약하는 한편 신돌석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성을 함락하는 크나큰 공헌을 세웠으며, 그 후에는 모진리에 피신하여 상처를 치료하면서도 글방에서 항일구국사상을 고취시키며 재기를 도모하였지만 총상 여독으로 1917년 2월 순국하였다.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