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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에서 거의한 심성지(沈誠之)의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이 청송에서 군기를 모집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이에 고무된 유림들은 토적복수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의 향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김대락을 중군장, 남두희를 우익장, 서효신을 소모장에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이어 심성지의진은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세확장에 힘을 기울였는데 조능호도 이때 종사에 선임되었다. 이윽고 같은 해 4월 2일 김대락이 이끄는 심성지의진의 주력부대는 인근지역의 김상종의진 및 김하락의진과 연계하여 감은리 뒷산에서 적군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적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과 경주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4월 심성지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로 하여금 3초의 군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의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임금의 해산 조칙에 따라 부득이 해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