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page


118page

1896년 병신 정월 16일 이곳 청송에서도 조성길이 격문을 띄어 향유와 유명무명의 의사 200여인이 참집하여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창의하였다. 설단입기한 후 수삭에 대구에서 공격해온 적병을 격퇴하고자 행군중 신성에서 분진 심대장은 향근곡하고 조성길을 각군 도지휘로 정진수 장한탁 김진방 장한두 남석우 조성일 남석술 조찬규 남석인외 다수장병이 이곳 안덕후산에 유진하니 4월 상순일이었다. 감은후산에 포진한 적병을 의군은 옥현에서 공격하니 종일토록 일진일퇴의 격전이 전개되었다. 세불리한 적병이 전화로 불타는 감은의 잔여민가에 방화하여 한 마을 백여호가 소진되었고 파아의 사상자도 무수하였다. 이때 왜추는 "임진시에도 청송은 불가침이라 하더니 과연 난공불락의 곳이다."하고 야반에 의성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서전에 대승한 청송의병은 사기충천하여 조성길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영덕으로 출병하여 흥해입성 합진하니 대구와 경주의 적병이 합세하여 맹공하므로 격전끝에 철군하니 타군 산병 수백명이 청송의병과 생사혈맹하고 청송으로 회군하였다. 기후 선유사 조유승의 자중 권유에도 불응하고 이천진이 화장에서 위급하므로 원군차 행군하다가 마평 동방에서 백병전을 전개하였으나 세궁력진하여 패하고 산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