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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외세의 압박으로 민족의 존립이 꺼져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구국항쟁에 생을 불사른 순국열사가 있으니 회산선생이다. 공의 휘는 시목이요 호는 회산이니 밀성대군 언침의 후예 문하시중 언부는 중조요, 송은공 휘 익은 증좌의정에 충숙공의 시호가 내렸으니 선생의 18대조다. 공은 이땅에 일제의 마수가 뻗쳐오던 1894년 경남 밀양군 초동면 신월리에서 테어나시니 부친은 한말 의정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한철공이요 모친은 광산 노씨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부친을 따라 서울에서 수학중 의친왕의 추천으로 도일 동경 상지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공은 일제가 조국을 강점하는 민족의 비운이 닥치자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적국에서 머물면서 조선교육신문 조선학생옹호동맹등을 지도했다. 1911년 부친을 따라 이 고장 의성으로 전거 기미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다음해 중국 상해로 망명 활동, 1922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출 그해 감찰월의 임무를 띠고 국내로 잠입 거금의 군자금을 모아 상해로 돌아갔다. 때에 이퇴계선생의 후예 동은은 그의 조부가 거금의 군자금을 공에게 주었는데 광복후 김동삼의 군자금 장부에 그대로 기록되어있다면서 공의 높은 애국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