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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괴산교회 김원휘조사는 3월 3일 평양의 대규모의 독립만세시위를 목격한 후 쌍계교회 박영화 목사에게 설명하고 함께 동지규합을 하였고 8일 서문시장의 격렬한 만세시위에 참가한 괴산교회 박우완 영수와 계성학교 박상동 이맹준 학생 등은 비안보통학교 학생들과 비안 안평의 기독교신도들을 설득하여 독립만세 시위거사를 확약하였고 12일 아침 비안보통학교에서 100여명의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오후 1시에 쌍계교회 뒷산에서 신도 학생 100여명이 만세시위를 하였으며 13일은 비안우시장에서 16일에는 비안 2동 장춘동의 농민 100 여명이 만세시위를 하였고 대사교회의 이종출 김옥돌 영수 이양준 이호출 이이경 이만준 이맹준 이수원 배세태 정갑이 김길도 최상근 지사는 동민 100여명을 독려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오후 8시에는 마전동에서 기도동까지 횃불시위를 하였다. 17일 다시 대사(우리골) 괴산 마전동을 거처서 창길동 교회 신도세 농민 4백여명이 안평주재소 앞에 집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시위대 기세에 일인순사와 한인순사가 모두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이변도 생겼고 석탑의 권수백조사와 강희석 김복식 정영동이 주동한 30여명의 만세시위가 있었고 봉양면 사부동에서 주민 100 여명도 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19일 아침대사교회 중심인물 이양준 이이경 권해운 이봉수 지사의 지휘하에 도옥동 냇가에 집결한 안평면민 7백여명이 모두 각자 도시락 지참에 태극기와 곤봉을 가졌으나 시위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하여 그 기세는 전투태세로 돌변하여 도이원으로 향한 시위선발대에 독립을 열망하는 남녀노소가 가세하여 천수백명으로 증가하여 2십리나 뻗힌 이 항일독립만세 시위대는 노도처럼 밀어부쳐서 도이원주재소를 박살내었다. 의성경찰서로 향한 시위대의 동태에 대한 정보에 긴장한 왜경은 개시중인 도이원시장을 폐쇄하였으나 오후 1시반 경에는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에 참여한 인근 주민이 천여명은 넘었다. 도이원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는 절정을 이루었고 이에 백여명으로 증파 동원된 왜헌병과 경찰은 해산을 요구하며 무차별 발포하여 30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흥분한 시위대는 곤봉과 투석으로 맞서니 대혈전으로 급변하였는데 선봉에서 지휘한 이양준 이봉수 이이경 권해운 지사가 모두 총상을 입었으며 피검된 주동인물은 51명이며 그중 권해운 지사는 호송 도중 순국하였고 이양준 지사는 3년형을 받고 복역 6개월 만에 순국하였다. 안평에서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한 지사 이화실은 2년형 이종출 김옥돌 김치명은 1년 6월형 최순권은 1년 2월형 이봉수 이만준은 1년형 이맹준 이수원 이흔이는 10월형 영수 이원춘 이순근 정갑이 김익휘 김길도 정부석 배세태 정만업 정장수 최상근 지사는 6개월형 이이경 지사는 6월형의 옥고를 치렀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