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page


341page

신우 유허비각(申祐 遺墟碑閣) - 의성군 향토유적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선2리 공은 고려말엽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퇴재(退齋)이고, 사헌부 장령과 전라도 안렴사(按廉使)를 역임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여 형조판서로 불렀으나 이를 뿌리치고 아주신씨(鵝州申氏) 의성 입향조이며 판도판서를 지낸 아버지를 모시고 단밀 땅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구천면 청산리에 장사를 지내고 3년을 하루같이 시묘하였다. 시묘동안 공의 정성이 지극하여 상(喪)이 끝나자 묘 앞에 쌍죽이 돋아났다고 하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공의 효행이 세상에 알려지자 동국여지승람과 삼강행실록에 등재되고 정려(旌閭)가 내려졌으며, 그가 살던 마을을 효자리(孝子里)라 부르고, 비명(碑銘)도 효자리비(碑)로 하였다. 비각은 창건 이후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고 특히 1992년에는 의성군의 지원과 지역민의 정성을 모아 2칸으로 증축 보수하였다. 드높은 기개로 절의를 다한 충신이자 효자였던 공을 제향(祭享)하는 속수서원(涑水書院)이 가까운 곳(북쪽)에 있다. 권세와 물욕에 집착하는 현실의 세태에서 돌이켜 보면, 절의와 효행의 길을 스스로 지켜 이 땅에 충효의 맥을 잇게 한 공의 유훈(遺訓)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경종을 울린다. 2005.9.25 의성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