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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이백파 선생과 고려혁명군을 재조직하고 다시 단두단을 조직하여 서울에 있는 일본인 집단살해 계획을 세운 뒤 1928년 소련영토인 연해주 일대에서 망명동지들을 규합하다가 해참위 청진 함흥동 감옥에서 4년여의 옥고를 겪었다. 출옥후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만주로 탈출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만주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옛 동지들은 찾을 길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고향에 돌아오니 때는 1935년이었다. 그로부터 국내 동지들과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8.15 해방 이튿날 의성경찰서에서 석방되기까지 20여회의 검거 투옥을 당했다. 해방후 대구치안유지회 생활부장 전국혁명자대회 의장 경북신문사장 및 주필 독립노농당 중앙당무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상국민의회 대의원 혁명동지총연맹 중앙지도 위원 백범 선생 살해진상규명 투쟁위원회 상임지도위원 독립노농당 당수등을 지내고 이젠 늙고 병든 몸을 고향집에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