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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다가 고려로 귀국할 때 종자(從者) 김룡(金龍)을 시켜 목화 몇 송이를 딴 후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겨우 한 그루만을 살릴 수 있었으나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가 퍼지도록 하였다.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있을 때, 의성군의 지세가 중국의 금주성(錦州城)과 흡사하여 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서 재파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의 자손이 의성 땅에 목화 재배를 시작한 경위와 목화를 처음 원나라에서 수입해 온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자 의성 목화 재배지에 탁암 김도화가 비문을 짓고 김희국이 글씨를 쓴 문익점 목면 유전비를 세웠다. 또한 1935년에는 현 위치인 금성면 대리리에 별도의 기념비인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면작을 독려하는 시책에 따라 세운 것이라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