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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천리마가 마판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다는 싯귀가 있다. 이는 바로 조국광복을 위하여 피끓는 애국청년으로서 눈보라치는 북만주 벌판을 달리다가 적의 감옥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이제는 늙은 몸을 고향의 초라한 오막살이에 던져서 여생을 보내면서도 오직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을 목마르게 바라고 있는 애국지사 현호 박석홍 선생의 장한 뜻을 읊어 주는 듯하다. 선생은 이씨조선의 국운이 기울어질 무렵 이곳 의성군 비안면 서부동에서 출생하여 일찌기 휘문의숙을 마치고 1914년 19세 소년의 몸으로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고 김약수 동지와 중국 운남군 관학교를 찾아가다가 일본경찰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만주에서 동지를 규합하더니 1920년 북만조선인청년 총동맹을 조직하는 한편 잡지 「농군」「혈청년」등을 발간하여 청년동지의 무장봉기를 제창하였고 김좌진 장군이 영도하던 신민부의 기관지 「신민보」에서도 구국혁명의 필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