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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 3.1독립만세운동경상북도 시발지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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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 3.1독립만세운동경상북도 시발지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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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공은 선산김씨 시조 김선궁(金宣弓)의 29세손이요 여말 충신 백암 김제(白巖 金濟)의 16세손으로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백계(栢溪)이다. 1565년 을축 12월 24일에 비안현 박연(比安縣 朴淵)에서 군자감 직장인 김예복(金禮復)의 장자로 태어났다. 성품이 강직하고 지략이 뛰어나며 시서(詩書)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며 지조가 간담(簡淡)하여 집에 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겸양하며 박학하여 막힘이 없으니 세상에서 추중하였다. 임란에 왜적 수천명이 예천 상주 등지에서 분탕을 일으키자 김희(金喜)절 의병장을 자임하고 향병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가서 조총(鳥銃) 가진 적과 창칼로 대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하니 적은 공의 머리를 베어갔다. 때는 임진년 10월 18일이요 공의 향년 28이었다. 공의 시신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니 세인은 놀라고 슬퍼하였으며 나라에서는 호조정랑에 증하였다. 공이 젊어서 전사하여 후사없으니 동생 김계(金啓)의 장자 옥(鈺)을 양자로 맞이하자 이분 또한 병자창의에 순절하니 양대의병장(兩代義兵將으로 빛나는 忠孝家門이라 고을 인사들이 1729년에 상충사(尙忠祠=比安忠烈祠)를 지어 공의 행적과 충절을 찬양 추모하고 울진 운암서원에 배향하였다. 명하여 이르되 청화산 봉오리 서녁에 솟고 --- 위수물 구비치며 남으로 흐른곳 충의의 집안에서 병법도 익힌 -- 백암의 후손이요 모화의 아버지라 임난때 의병장 분연히 앞장서서 - 단밀의 격전에 목숨 던져 싸우셨다 불리한 전지에서 머리를 잃어 -- 말가죽에 싸여 돌아온 시신 나라서 상내리고 유림서 사당지어 - 거룩한 백계 충의 길이 빛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