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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의병장 백계 김희공 충의비(壬亂 義兵將 栢溪 金喜公 忠義碑) 우리민족은 임진왜란을 한 하늘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적이 저지른 전쟁이라고 했다. 얼마나 뼈에 사무쳐서 나온말인가 왜국이 명나라 치는 길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1592년 임진 4월에 15만대군 이끌고 부산으로 침입해오니 국방이 허술한 나라의 성은 무너지고 수령방백은 도주함에 왜군은 거침없이 북상하여 24일만에 수도는 함락하고 임금은 의주로 피난하였다. 왜군은 다시 평양과 회령으로 진격하니 조선팔도는 온통 짓밟히고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 좋아하고 칼쓰기 익숙한 왜병은 잔인 무도한 만행으로 약탈과 살상을 자행하여 군병 아닌 양민의 노약과 여자까지 닥치는대로 창칼로 치고 찌르고하며 목자르고 귀 코 도려내어 모아가서 무덤까지 만들었다 .이때에 잡혀간 포로가 심만이 넘었으며 굶고 병들어 죽은자를 합하면 임란의 희생자는 백만이 넘었다하니 우리 역사상 일찍이 보지못한 수치요 비통한 일이었다. 전쟁나고 관군이 제구실 못할 때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유생과 승려가 붓과 목탁 던지고 창 검들고 나서며 농민은 낫과 괭이 들고 부녀자는 치마폭에 돌 날으며 적과 싸웠다. 전쟁의 요충인 영남의 의병 활동이 눈부신 중 상주 단밀(丹密) 땅에서 순절한 김희(金喜) 의병장(義兵將)의 생애와 전공을 밝혀 보고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