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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운동을 일으켰다. 일제가 러시아와 전쟁을 도발한 다음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로일교전 중 전략지점용 전신과 철도부설내하항행원야개간 등 권익 및 각부 중요 정무기관에 고문용빙과 강제협의를 듣게하는 등 제조약을 강요함으로 공은 외부와 정부에 정서하여 자주권상실 외세아부 민의무시 독단고식을 규탄하고 외부대신 이하영을 찾아 하천원야와 국가민족을 파는 죄를 통박하고 동지 강형원 려중룡 등과 영.미.청 등 각국 공관에 기서하여 일본의 독립침해 주권박탈 배신횡포를 열거하여 국제담판의 개최를 요청하였으며 일사와 군사령관에 투한하여 시정을 구하다가 체수되었다. 또한 일제가 친일 매국단체인 일진회를 조직하자 이를 규탄하다가 1905년 5월 일본헌병대에 의하여 체포되었으며 석방후에도 정부내의 친일대신들의 굴복 정책에 대하여 이를 탄핵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리고 광무제에게 비정을 탄핵하는 상소를 하여 제의 미움을 받기도 하였으니 려중룡 지우양 이병구 등과 모의하여 일본공관을 파쇄하려 하다가 거사전 발견되어 헌병대에 수감된지 5개월만에 석방되었으며 민참정 영환과 이참판 성렬 등에게 지서하여 위급한 국가의 구정책을 통론하였고 일본이 적신을 협박하여 1905년 11월 을사보호5조약을 강체함에 공은 통분을 못이겨 역적 이완용을 타살하려 하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6개만에 출옥하니 대부인이 이미 하세한 지라 효성이 지극한 공은 애호하면서 귀향하여 3년상을 마치자 경술합병이 강제로 체결됨에 다시 상경하여 독립문 앞에서 자결하려 하였으나 일본 헌병의 경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산 해평 우사로 돌아와서 일본 헌병들의 감시하에서 신음하다가 경진 5월 24일 향년 72세에 졸하니 교촌 광부곡 건좌에 안장하고 2006년 병술 10월에 선영 봉안 숭조원에 위패를 합봉하였다. 공의 창의정신과 비범한 지기를 영원히 기리고자 향내유생과 향민이 뜻을 모아 비에 담아 다음과 같이 명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