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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시다. 초야에 묻힌 28세의 약관으로 을사늑약에 공분의 용솟음을 억누를 길없어 그날 서울로 올라가 월남 이상재옹과 늑약의 폐기책을 꾀하다가 일경에 잡히어 옥고를 겪었고 경술국치를 당해서 일황에게 합병을 취소하고 국교를 복구하라는 내용의 장서를 보내려다가 또다시 일경에 잡혀 무한한 고초를 치뤘다. 선생이 일경에 잡혀갈 때 모부인으로 부터 "어미때문에 뜻을 변ㅎ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은 바 있고 옥고중에 군민은 물론이고 시중의 부녀자들로부터도 매일 끊임없이 격려와 사식 공궤를 받아 왔으니 이는 모부인의 가르침을 체득한 선생의 의열이 이들을 감화ㅎ게 한 것이라 선생은 마침내 동지 일송 김동삼선생과 중국으로 건너가려 하였으나 일경의 감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성산하에서 옥고의 지침과 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