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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얽매어 가슴에 서리는 통한을 가누지 못하며 금릉고을 개령으로 옮겨가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나라와 겨레위해 큰일 할때를 기다리던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만 책을 덮고 일어나 영남일대의 유림을 일깨우고 이끌며 앞장서 활약하다가 개령지방의 주모자로 잡힌몸이 되었으나 마침내 그들의 회유정책에 따라 풀려나자 그로부터 그 인생은 오로지 나라와 겨레를 위한 가시밭길로 이어졌으니 우천의 동지 유우국과 밀약 가산을 팔아 일천원의 비자금을 마련 뒤따르는 젊은 투사들을 이끌고 대륙으로 건너가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무력항쟁의 인재양성에 대비하고 이억만리 설원을 너머 의군부에 종사하다가 동지 조강재와 모의 군자금 모집과 동지규합의 사명을 띠고 나라산으로 스며들어가서 동해지역을 누비며 활약하던중 뒤밟아온 왜경에게 경주에서 사로잡히어 그로부터 3년 4개월여를 혹독한 고문으로 생사의 기로를 수없이 넘으면서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한사람의 동지도 끌어들이지 않았다. 사경에서 내처지자 다시 중국으로 가서 동지들의 정성으로 형독을 치료받아 가까스로 소생하였다. 그러나 나라안의 조직이 허물어져감을 듣자 서둘어 귀국 평양과 서울을 오고가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고 그 이사에 취임하여 이안 원익상 조만식 윤??등 저명한 인사를 총망라하여 의론하며 민족자립의 기틀마련에 힘을 기울이던중 옥중에서 입은 형독이 다시 악화되어 귀향 제심당에 목욕하며 상한 몸을 요양하다가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채 1943년 9월 8일에 세상을 떠나시니 이승에서 계시기 예순네해에 나라위해 싸우시기 스물네해였다. 아! 거룩하도다 님의 넋이여 오늘 여기 나라가 얼마나 소중하며 겨레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하는 돌을 세워 천추에 전하노니 후진들은 님의 뜻 가슴에 새겨 길이 잊지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