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抱月堂 金奉律 和尙 行蹟碑(포월당 김봉률 화상 행적비) 나라가 바로 서지못하면 정사가 위사속에 파묻히고 인심이 어지러우면 진실이 비리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여기 외로웠던 날의 한 스님의 행적이 있으니 그가 바로 1927년부터 1948년까지 직지산문을 지키다가 뜻하지 않은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룬다음 그 여독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뜨신 포월당 김봉률주지스님 바르 그 분이시다. 김봉률스님은 1897년 6월 23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에서 아버지 선산김공 병문과 어머니 김해김씨 하림의 3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해인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해인학림에 들어 수학했으며 후일 일본경도 불교대학을 졸업했다. 직지사 퇴운 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나 그 당시 나라 잃은 울분을 가슴에 품었던 우국지사가 다 그러했듯 스님은 산문이 당신의 은신처요 불보살이 당신의 호신불이었다. 이래 60성상의 남선북마 3.1운동때에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전국 사찰을 두루 돌며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3년 옥고를 치르기도 했었다. 1919년 만주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자 입교하여 광복군으로 광야를 달리다가 다시 국내로 잠입 체포되어 또 2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풍찬노숙 스님의 가사자락은 마를날이 없었고 6.25동란에 두아들까지 나라에 바쳤건만 광복된 조국은 자기정권에 편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역자라는 누명을 씌웠다. 이래 반세기 이 오욕의 굴레를 벗겨드리기위하여 오직 두점 혈육인 송자, 죽자 자매와 상좌 일당스님의 불말의 노력으로 백일하에 신원이 되고 1996년 건국훈장을 추서받아 여기 돌 한덩이의 등불을 밝혀 공양드리오니 불굴의 지사시여 스님이시여 왕생극락하사이다. 합장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