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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려운 삶을 겪은 항일애국지사의 한 분이 구재 최학길 선생이시다. 선생의 초명은 익길이며 자는 자는 자적 별호는 주산 관향은 화순이다. 고려 홍건적란에 절사한 충절공 영유와 조선 무신란에 창의순국한 지재공 동규의 후예요. 효자 기은공 하대의 현손이며 교육자 남애노사 창락의 차남으로 1862년 1월 2일 금릉군 현 김천시 조마면 안서리에서 태어났다. 자라며 충효가의 가풍에 혼이 젖고 당대의 큰 스승 허전 장복추 이종기 문하에 나아가 선비 도를 익혔으며 한 시대의 지사들과 사귀어 의로를 지향하였다. 7세에 어버이를 위하여 익은과일을 주으러 다녔고 10대에는 노출된 해골을 묻어주고 제문을 지었으며 굶주려 동사 직전인 어린거지에게 입었던 옷을 벗어주기도 하였다. 27세에는 과거보고 오던 중 상원의 이의중이 전염병을 앓자 지닌 물건을 팔아 숙박비와 치료비로 주고 이레나 합숙하며 극력구호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41세에도 일가 9인이 살인옥사에 연루되어 8개월째 구금된 인동의 금사과가 구원을 간청함에 생면부지였으나 백방으로 변호하여 끝내 무죄 방면토록 하니 의인이라 칭송되었다. 43세에 음보로 내부원외랑이 되니 어떤이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