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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취코저 1920년 3월에 김천에서 결사한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은 교남일원에서 활동을 전개하여 일제에게 공포를 주고 동포에게 용기를 주어 한국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도다. 일괴 이명균선생은 실로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의 단장겸 재무총장의 수임을 맡아 활약하시다가 거부의 재산을 국권회복의 군자금으로 봉납하고 존귀한 신명을 조국광복의 제단에 희생하셨으니 그 절의의 장함을 어찌 붓으로 다 나타내리오. 선생의 관향은 연안으로 조선 성종조에 청백리로 이름난 좌리공신 연원군 충간공 휘 숭원을 14대조로 하여 1863년 1월 14일에 경상북도 금릉군 구성면 하원리에서 호상거사 휘 연성의 영윤으로 탄생하여 비범한 재모에 견확한 지조는 사우의 촉망을 받으셨도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박탈당함을 본 선생은 침략 원흉의 암살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분통한 나날을 보내다가 3.1만세의 함성이 온누리를 진덩히자 교남일월을 편력하여 시위운동을 선도하셨고 또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에 가담 활동하다가 옥고를 겪으셨도다.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의 활동상이 일제에게 탐지되어 검거된 30여 단원들과 모질고도 악독한 예심을 받던 선생은 늠연히 일헌을 꾸짖으며 불소불굴 끝까지 항쟁하셨으나 육순노구로서 어찌 그 악형을 이겨내리오. 1923년 5월 2일 천추의 함을 품은채 순국하셨도다. 일사구국! 선생의 거룩한 자취는 길이 호국의 귀감으로 받들어질것이며 음수사원! 광복된 조국에 삶을 누리는 거레 뉘아니 그 넋을 우러러 사모함이 없으리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3.1절을 기하여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여 그